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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양명주 신조어

나인스파크 2024. 7. 30. 10:25

목차



    주목!  모르면 망신당하는 신조어

     

    이채양명주’를 아시나요? 마실 수 없습니다. ‘이채양명주’는 술이 아닙니다.

    ‘이채양명주’는 윤석열 정권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다섯 건의 비리 사건들의 목록입니다.

     

     

     각 사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 조합해 만든 신조어입니다. 

    술 이름처럼 보이도록 한 것은 사람들이 외우기 쉽고 전파하기 쉽게 하려고 한 듯합니다.

    기억하자!  이채양명주

     

    이 :  이태원 참사

    채 : (고) 채수근 상병

    양 : 양평고속도로

    명 : 명품백 수수

    주 : 주가조작의혹



    이태원 참사에서 ‘이’,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에서 ‘채’,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에서 ‘양’,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씨의 명품(디올) 가방 수수 사건에서 ‘명’, 주가조작(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주’ 자를 끌어와 ‘이채양명주’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이름을 보고 아쉬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오송 수해 참사도 빠지고, 고발 사주 사건도 빠지고, ‘김건희 특검법’에 ‘여사’라는 호칭을 안 붙인 방송사에 행정지도를 하고, 일기예보에 미세먼지 좋음을 뜻하는 ‘1’를 내보낸 방송사들에 선거운동 위반 혐의를 씌우는 어처구니없는 언론탄압 사건도 빠졌습니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한정된 다섯 글자 안에 윤 정권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비리를 다 쓸어 넣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비리를 일일이 다 집어넣어 표현하겠다는 욕심에 글자 수를 마구 늘리면 기억하기 어렵겠죠. 

     

    더 중요한 건 ‘이채양명주’라는 단어가 탄생하는 순간 그 뜻이 다섯 개의 구체적인 사건을 뛰어넘어 윤 정권의 총체적 비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넓어졌다는 겁니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수사 방해 혐의를 받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은 ‘이채양명주’라는 조어의 유효성을 잘 드러내 주는 사례입니다. 이 사건은 윤석열 정권이 법을 무시하고 더 나아가 국가 기구를 사유화하는 비리의 실상을 폭로해 주는 교과서입니다.

    지금 이종섭 사건과 관련해 나오는 비판들은 공수처의 수사를 받는 주요 피의자를 출국금지까지 풀어주면서 내보냈다는 것, 피의자를 대사 임명이라는 편법을 사용해 나라 밖으로 도피시켰다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문제죠. 하지만 저는 그런 비판은 곁가지의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도피가 문제가 아니라 애초 중요 피의자인 그를 대사로 임명한 것이 가장 큰 잘못입니다. 

     

    대통령실을 비롯한 여권에서는 ‘도피성 출국’을 한 이 대사가 ‘조사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귀국할 수 있다’라고 눙치고 있지만, 조사받으러 들어오느냐 아니냐가 핵심이 아닙니다.

    (전)국방부장관 이종섭 사건의 본질


    주재국에 파견돼 나라의 주권을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는 어떤 공직보다 철저하고 세밀한 검증 절차를 거칩니다. 최근에는 직업 외교관 중에서도 작은 흠결 때문에 대사 임용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누구는 사소한 잘못으로 공관장이 될 수 없고 누구는 잘못이 크고 명백한데도 공관장으로 나가는 것은 공정의 파괴입니다. 대사직을 임명자가 맘대로 꺼내쓸 수 있는 사유물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종섭 대사는 그동안 직업 외교관에게 들이대 온 검증의 잣대로는 절대 대사직에 임명될 수 없는 신분입니다.

     

    어떤 사건이든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는 외교관이 수사 진행 중에 대사나 총영사로 나간 적이 있는지만 살펴봐도 쉽게 답이 나올 겁니다.

    이런 사정으로 볼 때 검증 업무를 하는 법무부도, 공관장 인사를 실무적으로 처리하는 외교부도 ‘보이지 않는 힘’에 눌려 찍소리도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지’밖에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이종섭의 선택도, 법무부의 검증 부실도, 외교부의 무사안일도 아닙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 그를 호주대사로 내보내려고 했는지가 핵심입니다. 바로 대통령이 문제입니다.

    단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종섭 대사는 지난해 9월 채 상병 사건 개입 문제로 국회에서 탄핵당할 위기에 처하자, 국방장관직을 사임했습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3월 4일 호주 대사로 임명했습니다. 대사는 상대국 아그레망을 받아야 하고, 통상 이런 절차는 1~2개월 걸립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그를 호주 대사로 보내려고 결정한 시점은 대략 1월 중순께일 가능성이 큽니다. 

     

    공수처가 채 상병 수사 외압 사건과 관련해, 수사 착수 넉 달 만에 국방부 관련자들에 대한 강제수사를 실시한 시점과도 일치합니다. 이 대사뿐 아니라 그에게 외압을 가하도록 지시한 사람이나 세력이 초조할 수밖에 없는 때입니다.

    대통령실과 여권은 이 대사 임명과 관련해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습니다. 전임 대사가 정년으로 임기가 끝나 잠시도 대사 자리를 비워놓을 수가 없었다는 설명이 대표적입니다. 전임 대사가 지난해 12월로 정년이 된 건 맞지만, 외교공무원 임용령에는 정년을 초과해도 할 수 있는 수십 개의 자리가 적시돼 있습니다. 

     

    호주대사도 그런 자리 중 하나입니다. 전임 대사는 윤 정권 때인 2022년 12월에 부임했는데, 그 자리가 ‘정년 초과 가능 직위’가 아니었다면 그때 내보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다


    대사를 바꿀 때 공백을 두지 않는다는 얘기도 헛소리입니다. 윤 정권 때의 사례 몇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2021년 7월 부임한 김건(현 국민의힘 비례위성정당 ‘국민의 미래’ 비례대표 후보) 주영국 대사는 다음 해 5월 귀국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에 취임했습니다.

     

     후임 대사는 무려 다섯 달 뒤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윤 대통령 부부가 그해 9월 숨진 엘리자베스 여왕을 조문하러 갔을 때는 영국에 한국 대사가 없었습니다. 2021년 8월 31일 윤 정권의 초대 러시아 주재 대사로 부임한 장호진(현 국가안보실장) 대사는, 지난해 3월 외교부 1 차관으로 발탁돼 귀국했습니다. 

     

    윤 정권은 무려 100일 이상 후임 대사를 임명하지 않고 공석으로 뒀습니다. 호주가 더 중요한 나라인지 영국과 러시아가 더 중요한 나라인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통령실과 외교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 그리고 국민의힘에서 이 대사 부임과 관련해 내놓는 말은 상호모순과 거짓으로 가득합니다. 있을 수 없는 짓을 저질러놓고 사후에 이유를 꿰어 맞추려니까, 거짓이 거짓을 낳고 있습니다. 이런 거짓 해명이 횡행하는 데는 그들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쓰고 전하는 미디어의 책임도 큽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직전에 사임한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도청 사건을 저지른 사실 때문에 물러난 게 아닙니다. 그 사건을 덮으려고 거짓과 증거인멸 등으로 수사 방해를 하다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종섭 사건은 그런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습니다. 이 대사가 공수처의 허가를 받고 출국했다는 대통령실의 설명에, 공수처가 허가해 준 적이 없다고 즉각 반박한 것은 한 예에 불과합니다.

    어떤 큰 사고가 터질 때, 여러 요인 중 가장 약한 고리가 폭발을 불러일으키는 뇌관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윤석열 정권의 비리와 폭정이 거듭되면서 그것들을 파헤쳐 바로잡으려는 움직임과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윤 정권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김건희 특검법(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도 대통령 거부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며 그런 요구를 꾹꾹 눌러 왔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 순간에 불을 댕긴 것이 바로 이 대사의 무리한 임명입니다. 

     

    이 대사 임명은 채 상병 수사 개입 사건 없이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종섭 사건이 채 상병 수사 개입 사건이라는 뇌관을 때리고, 그것이 다시 ‘이채양명주’가 대변하는 윤 정권 비리와 폭정으로 향하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입니다.

    정부·여당은 그를 공수처에 자진 출두시키는 것으로 불을 끄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종섭 사건으로 타오른 분노의 불길은 이미 채 상병 사건을 넘어 윤 정권의 총체적 비리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습니다. 꼼수로 위기를 일시적으로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위기 자체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게 이번 이종섭 사건의 교훈입니다.